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3-40년 전 제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문과 이과 구별할 것 없이 한두 과목을 제외하고는 모든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거의 모든 과목을 다 가르쳤습니다. 문과를 지망했던 저도 물리 화학 생물 지학 등 이공계 과목을 빠짐없이 배울 수 있었던 것을 참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 배웠던 것 거의 다 까먹고 그 때 배웠던 것들 생활 속에 잘 적용하지도 못하지만, 어쨌든 그런 과정을 통해 세상살이에 필요한 상식의 폭은 많이 넓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들만 있고 그래서 좋은 것들만 가르치고 배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돌아보면 선생님들께서 좋은 것들만 가르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학생들은 요즘 못지 않은 입시 지옥을 헤매고 있어서 학교마다 좋은 입시결과를 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었습니다. 입시결과가 좋은 학교는 명문이 되고 그렇지 못한 학교는 학교로 여기지지도 않아서, 소위 명문이라는 데를 다닌 사람들은 평생 어깨와 목에 힘을 주고 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제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사람 대접을 쉽게 받기 어려운 고질병이 우리 사회에 있었습니다. 어쩌다 공부 좀 잘해서 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손에 쥐면 그것을 얼마나 눈부시게 발휘하는지, 그런 세상을 곁눈질하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꿈은 그래서 늘 ‘대통령’이었습니다. 학교는 진지한 ‘배움터’이기 보다는 ‘입시학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한두 번의 입시 결과가 한 개인이나 학교집단의 미래를 고정시키는 두려운 현실에서 선생님들이 소신껏 자신의 교육철학을 지켜내기는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그런 뒤틀린 구조 속에서 학창시절을 지내면서, 교무주임 선생님이 각 학급의 주번들을 날마다 불러, 특별활동이나 학급회의 시간에 영어 수학 국어 등의 주요 과목을 몰래 교수한 사실을 숨기고 학급일지에만 특활이나 홈룸을 했다고 기록하라는 주문을 늘 하셨고 순둥이 학생들은 어김없이 그 지시를 따라 장학검열에 대비한 이중장부를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솔직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분식회계나 뇌물, 뒷거래 등의 기만술은 어느 날 아침에 느닷없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학창시절부터의 오랜 학습의 결과라는 것을 제대로 짚어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엊그제, 수능을 앞두고 많은 고등학교에서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이러저러한 행사를 많이 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학교에서는, 아예 삶은 돼지머리 상차림을 해놓고 고사를 지내고 학생들에게 죽은 돼지 입에 지폐를 물리게 하는 한심한 짓을 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삶은 돼지 머리나 대학 정문에 붙이는 엿 때문에 입시 결과가 정말 좋아진다면 그 좋은 일을 왜 단 한 번만 하는 지, 돼지 잡는 법, 엿 고르고 엿 붙이는 법을 열심히 가르치지 않고 왜 학생들을 밤낮 없이 학교에 묶어두고 죽어라 학과공부만 시키는 지 제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006. 11. 16.)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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