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릴 적, 마을마다 큰기침이나 헛기침만으로도 그 고을의 질서를 가볍게 잡는 어르신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각 가정에는 그 가정의 어른이 ‘안방’을 든든하게 지키고 계셨습니다. 세상살이의 크고 작은 일에 언제나 따르기 마련인 복잡한 이해관계의 어지러운 매듭들을 그 분들은 참 지혜롭게 풀어내는 신비한 위엄과 힘을 갖고 계셨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는 것이 동네 고샅을 지나시는 어른들의 눈에 띄면 당장에 지게 작대기가 매서운 회초리가 되어 철부지들의 엉성한 몸가짐을 곧추 세우곤 했습니다. 뉘집 자식이건 어른들의 눈에 설은 못된 행동을 하면 아무 어른이나 나서서 따끔하게 혼을 냈습니다. 고을 안의 젊은이들은 모두다 ‘우리 자식’이었지 ‘내 자식’이라는 생각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른들 앞에서 담배를 꼬나 물고 다니는 행동은 말할 것도 없고 발걸음 하나도 경망스럽게 내디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가정사역세미나나 자녀양육훈련 프로그램을 들여다보면 한결같이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어야 한다”는 얘기뿐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강사들의 확신에 찬 주장에 굳이 딴지를 걸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식정보 산업사회로 넘어오면서 대가족이 해체되고 핵가족화 되어 집집마다 자녀를 하나나 둘 정도 낳거나 심지어는 아예 출산 자체를 기피하는 흐름이 굳어지면서 하나 둘밖에 없는 자기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과잉 보호 열정까지 합세하여 가정사역 강사들의 ‘아이들 기 살리기’ 주장은 그야말로 듣고싶은 이 시대의 복음이 되어 부모들의 이기적인 신념을 극도로 강화시키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인 ‘체벌 논쟁’ 역시 이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오직 자기들만을 일편단심 위해주는 부모들하고만 영원히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역시 다른 가정에서 자기들 못지 않게 귀하게 자라온 다른 아이들과 함께 좀더 거대한 사회를 이루면서 그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살아야만 한다는 데 있습니다. 집안에서 자기가 최고로 귀한 줄 알고 훌쩍 자라난 아이들이 세상에 나가 자기만큼 귀하게 자라난 다른 사람들이 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들과 더불어 대화하며 양보하며 사는 법을 익히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이 어렵고 힘든 일이 오늘날 학교 선생님들에게 몽땅 맡겨져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제 아무리 거짓말쟁이 부모라도 자식만은 정직하고 순결하게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어도 어려서부터 아주 능숙하게 거짓말을 잘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기 살리기’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 아이들 영혼 깊숙이 뿌리내린 ‘죄성’을 먼저 뿌리뽑아주는 일입니다. 이 일은 철부지 아이들 스스로 도무지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나 선생님 같은 어른들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예전처럼, 어른이 어른자리를 다시 찾아갈 때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럴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앞날을 얼추 낙관할 수 있을 것입니다.(2006. 7. 13.)
이광우 목사의 CBS '5분 메시지' : 매주 목요일 오후 1:55, FM 103.7Mh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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