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0장(8절)에 노아의 아들 함의 장남 니므롯이 등장합니다. 그는 폭력으로 남을 짓밟기를 좋아하는 최초의 전제군주(영걸)로서, 유명한 바벨론 제국의 기초를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니므롯 이후, 인류의 역사에서 힘 좀 쓰는 전제군주가 나오면 "아, 니므롯 같다"는 속담이 생길 만큼 그는 힘있는 사람이었으나, 성경은 그가 그 힘을 가지고 이 땅에 사랑과 섬김을 증진시켰다는 아름다운 내용을 단 한 줄도 소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고대사회의 수퍼스타(Super Star)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막강한 힘으로 그저 남을 짓밟는 삶을 살며 그럴 듯한 대제국의 기초를 놓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하나님 보시기에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가끔씩, 우리들의 직장사회가 니므롯의 왕국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물론 이것이 저 혼자만의 오해와 착각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훈련이 혹독하고 군기가 세기로 이름난 공수특전단에서 장교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공수특전단의 구호는,
"밤을 낮처럼, 산악을 평지처럼"
"안되면 되게 하라(Nothing is impossible)"
입니다. 상관이 명령하면 이유 불문하고 그 일을 목숨 걸고 해내야만 특전요원 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토록 군기가 엄한 공수특전단에서도 말단 사병들은 장성(General)을 그다지 겁내지 않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등병에게는 한 계급 위의 일등병이 장군님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로 여겨지며, 일등병에게는 자기보다 딱 한 계급 더 높은 상병이 장군님보다 훨씬 더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땐, 직장에서의 선후배관계가 장군님과 일등병, 일등병과 이등병의 관계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후배(부하직원)에게는 일등병 격인 선배의 말 한 마디가 장군 격(우리 생명의 주인이시요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을 이렇게 이유해서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야기의 편의상 잠시 실례를 하게 되었습니다. 구주 예수님을 어찌 일개 장군에 견주겠습니까?)인 예수님의 명령(성경말씀)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종종 보았습니다. 고참 일등병이나 상병의 인사권도 장군님이 갖고 있다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이등병처럼, 아예 한 술 더 떠서 참으로 비겁한 삶을 "자발적으로" 사는 '직장의 이등병들'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분초를 다투어 신속히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거나 사업이 망할 수도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선배님의 명령이 즉시 즉시 시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장의 특수성, 때론 전문지식(기술)이 도제형식으로 전수될 수밖에 없는 부득이한 현실적 여건 때문에, 직장에 공수특전단 이상의 상명하복(上命下服)의 체계가 필요할 때도 더러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문제는, 회사의 사활이 걸린 것과 같은 절박한 이유가 없는 일반적인 삶의 영역(예컨대, 회식 시 술 마시는 문제)에서조차 이런 인간관계의 도식이 고스란히 강제로 적용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더 한심한 것은, 거룩한 하늘백성들의 모임인 신앙공동체 안에서조차 이런 세속적 계급구조가 그 위세를 떨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부디 오해 마십시오. 후배가 선배들과 대충 맞먹어도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하늘같은 선배님께 함부로 대드는 싹수없는 후배가 있다면 그는 '신앙인'은 커녕 이미 '인간'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 이상우 교수(서강대)는 질서를 "획일성"이 아닌 "예측 가능성"으로 규정했습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하고 일하면 얼마쯤 후엔 어떤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예측할 수 있고 그 예측이 어느 정도 맞아들어 가는 사회가 질서 있는 사회라는 것이지요. 열심히 성실하게 공부하고 봉사하기보다는 열심히 일등병 선배의 술자리 시중을 들어야 장차 뭔가를 얻을 수 있는 사회(직장)라면, 그 것은, 이등병 후배가 일등병 선배의 술잔을 거부하는 괘씸한 질서문란행위(?) 때문에서가 아니라, 이미 그 자체로서 형편없이 무질서한 저질집단인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똑 같이 술을 마셔야만 공동체의 질서가 유지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질서'와 '획일성'을 혼동한 것입니다. 음주 문제를 다루면서 지금 우리가 인정해야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 '흡연권' 만큼 '혐연권'도 인정돼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음주권'이 있다면 '음주거부권'도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솔직하고 정직하게"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음주를 거부하거나, 어떤 불가피한 사정으로 술 마시는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 <괘씸죄>를 덮어씌워 너무 저급하게 고통을 주며 인권(?)을 유린하는 몰상식한 반(反)지성적 행위가 더 이상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일 이런 관행이 계속된다면 우리들의 직장은 더 이상 지성인의 사회가 아니므로, 그 직장인들은 결코 지성인이라 자부하며 어깨에 힘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획일성'을 '질서'로 착각하는 흐름은, 서글픈 군사문화의 후유증입니다. 만일 그래도 이런 흐름을 고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차라리 회사의 제복을 벗어버리고 서둘러 '검은 베레모'와 '얼룩무늬 군복'을 걸치고 공수특전단에 자원 입대하십시오. 차라리 그게 정직하지 않겠습니까?
사사시대 뺨치게 혼란스러운 이 땅의 직장사회에 장군님(예수님)의 눈치를 진지하게 살피는 지성적인 일등병(선배), 당당하고 성실한 이등병(후배)들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막 12:17)는 장군님(예수님)의 명령을 진지하게 받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또한 간절히 바랍니다.
|
